98년 전 외침 그대로,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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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와 김포시3․1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광복회원을 비롯해 유영록 시장, 홍철호·김두관 국회의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시는 이날 관내에 주소를 두고 있는 독립유공자 41명의 배우자와 그 후손들의 이름을 일일이 소개했다.
유정열 오라니장터 3․1만세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김포시 3․1만세운동의 경과를 보고하고 강성보 광복회 지회장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유영록 시장은 기념사에서 "지금의 서울 강서구, 양천구, 인천 계양, 검단 지역이 98년 전에는 모두 김포였다"면서 "김포는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북한과 접해있는 우리 김포가 화해와 협력으로 향후 대한민국이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데에 노력하며 순국선열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호석 김포시3․1운동기념사업회장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는 크다"면서 "3․1운동 후 무장투쟁의 기치를 들었고 독립운동을 대내외에 알리며 상해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헌법에서도 상해 임시정부를 법통으로 삼고 있다"면서 "1948년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한다는데, 이는 3․1절 정신과 수많은 독립투쟁을 벌인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김포에서는 1919년 3월 22일 당시 월곶면, 검단면을 시작으로 양촌면, 양동면, 고촌면, 군내면, 하성면 등에서 8일 간 집중적으로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일제의 재판 판결문과 1955년 발행된 '경기도지역 운동일지' 등에 따르면 김포 주민들은 총 15회의 집회에 무려 1만 4453명이 집회에 참가했으며 부상자 120명, 체포자 200명에 달할 정도로 적극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