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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가족에 문을 열어준 봉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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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책을 읽은 지 워낙 오래 되었다고 해도 어찌 그리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전 그래서 제가 읽지 않은 3~6권 사이에 이곳이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찾아본 결과 이곳은 바로 제1권, 가장 많이 읽혔고 가장 강한 감동으로 다가왔었던 바로 그 1권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1, 2권이 나온 당시 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었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었던 게지요.
 
이번 참에 다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역시 아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싶어졌습니다. 제가 멋모르고 다녀온 이곳, 물론 알았다면 갈 수 없었던 곳이긴 하지만 유홍준 선생이 이야기하는 부분을 스쳐지나온 것이 앞으로 더 갈 수 없기에 자꾸 아쉬워졌습니다.
 
지난 연말, 저희 가족은 1박2일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문경으로……. 가는데 하루가 거의 지났고 돌아오는 길도 한참 먼 문경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한 곳은 가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 문경의 여기저기를 검색해보니 적당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경 봉암사~~.
 
관리소 같은 곳에서 절까지 이르는 길은 거의 2km정도 되는 듯합니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가니 갑자기 탁 트인 시야, 하지만 절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꽤 큰 절인 것 같던데 이상하다며 주변을 둘레둘레 살피는데 스님 한 분이 산에서 내려오시더군요. 절은 어느 쪽에 있나요? 스님은 반대편을 알려주시고는 굉장히 빠르게 걸어가셨습니다. 남편과 저, 아들 셋은 스님과 전혀 다르게 어슬렁거리며 절을 찾아 걸었지요. 바쁠 것도 없고 열심히 찾을 것도 없는 중생들이라 그저 신발에 눈이 들어가지 않으면 행복할 따름이었기에…….
 
   
 
가다보니 보물로 지정되어있는 지증대사 적조탑비가 보였습니다. 요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설명판이 워낙 잘 설치되어 있어 어느 시대, 어떤 연유에서 이러한 비가 세워졌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가 않습니다. 지증대사라면 신라시대의 선승이니 이 절이 세워진지가 정말 오래되었구나……. 그러네……. 최치원이 비문을 썼다는데 거의 안 보인다…….
 
비문에 새겨진 글은 참으로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최치원은 지증대사의 입적을 이리 표현했습니다.
 
오호라!
별들은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달은 큰 바다로 빠졌다.
 
물론 이 내용은 집에 돌아와서 유홍준 선생이 쓴 글을 찾아 읽고 알게 된 부분입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겨울의 맵싸한 공기처럼 청명합니다. 백두대간 자락이어서 그런지 산은 무척 높습니다. 봉우리가 겹겹이 둘러진 것이 마치 이곳을 보호하는 듯한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산은 높지만 뾰족하지 않습니다. 눈과 어우러진 둥근 봉우리들이 절경입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싫증나지 않은 푸근한 산입니다.
 
   
 
드디어 절이 보입니다. 절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무슨 신기루 같았습니다. 갑자기 툭 나타난 느낌이랄까……. 이 큰 절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기에 말입니다. 옷장 속에서 갑자기 나니아라는 환상의 세계로 툭 떨어진 것처럼 세상과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 이곳만 따로 존재하는 듯한……. 절 옆을 휘감는 개울은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했습니다.
 
   
 
봉암사는 여느 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대웅전, 극락전, 지장전, 삼신각 등 작은 집들이 조각조각 떨어져있는 평범한 절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절에서는 흔치않은 긴 건물들이 몇 채나 되었습니다. 보통 가장 크게 보이는 곳은 대웅전인데 이곳의 대웅전은 이 집들을 지나야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머무는 집으로 보입니다. 보통 다른 절은 스님들의 주거공간은 절 한 켠에 따로 있어 일반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공간입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니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보통 붙어있지요. 이곳은 그런 푯말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그래서 여긴 사람들이 많이 묵어가는 곳이 아닌가 혼자 생각했었답니다. 긴 절집 처마에 고드름이 한창입니다.
 
   
   
   
 
절 중앙으로 가니 대웅전이 보입니다. 대웅보전의 문은 꼭꼭 닫혀있었습니다. 신라시대 세워진 절이라지만 중간에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옛 절은 남아있지 않고 모두 현대에 지어진 듯합니다. 반짝 반짝 윤이 나는 단청이 그렇습니다. 보통 대웅전은 문을 열어두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예의를 표할 수 있게 해놓는데 닫혀있는 문을 보면서 아무리 사람 없을 월요일이지만 이상타싶었습니다. 정면의 문을 열려하니 괜히 마음이 꺼려져 옆문을 열어보았습니다. 들어가 보기까지 했어야 했는데 신발 벗기가 너무 귀찮아 그만두었습니다. 나중에 정말 후회했습니다.
 
다른 절 건물에 비해 대웅전은 오히려 소박하더군요. 대웅보전에 서니 절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사람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치워진 눈, 그래서 드러난 땅이 정갈하게 보입니다. 
 
   
 
   
   
 
이곳은 절 같지가 않고 무슨 산채 같아. 홍길동이 살던……. 정말 그랬습니다. 산 속에 뚝 떨어진, 산의 비호를 받는 홍길동의 산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 상관없이 자기들만의 세상을 따로 만들어놓은 듯……. 사람들에게 감히 들어올 생각을 말라하는 듯…….
 
알고 보니 지증대사가 이곳을 둘러보시고는 여기는 스님의 거처가 되지 않으면 도적의 도굴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는군요. 참 사람의 느낌은 비슷한가 봅니다. 지증대사께서는 산세도 보시고 터의 기운도 보시고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다른 눈으로 이를 아셨겠지만 역시 사람의 느낌 아니겠습니까. 감히 지증대사랑 비추어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봉암사의 또 하나의 보물이라는 정진대사 원오탑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탑을 보아도 크게 아는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있다 해도 지식적 앎에 불과해 크게 느껴지지 않으니 보나 안보나 다를 바가 없어 그렇습니다.
 
유홍준 선생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하셨으나 저는 이렇게 자주 이야기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보이는 만큼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음에 느낌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느낌의 공간을 가질 감성의 여유를 비워놓지 않으면 안다고 해서 절절한 감성으로 다가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절 문을 나섭니다. 스님 한두 분 뵐만도 한데 절은 우리 셋밖에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합니다. 우리끼리 웃고 즐기며 절을 아니 산채를 누비고 다니며 우리만의 세상을 즐겼습니다. 절 문을 나서면 바로 정말 예쁜 개울이 나타납니다. 살얼음이 언 밑으로 졸졸졸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개울이 역시 세상과 단절시켜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건너편에 일주문 같은 것이 보이고 다른 길이 놓여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가보고 싶었으나 손발이 점점 꽁꽁거리고 있었기에 포기했는데 아차, 그 곳에 진짜 보물들이 있었다네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진짜 보물들……. 백운대라는 널따란 암반과 바위에 새겨진 인상 좋은 마애불까지……. 추위가 이 보물들을 볼 기회를 놓치게 했습니다. 아니 아는 것이 없어 느껴볼 기회까지 놓치고 만 것이겠지요.
 
돌아 나오는 길, 아까 지나쳤던 관리소 앞에 없던 줄이 쳐져 있습니다. 아이가 줄을 걷으러 나갔는데 관리아저씨가 나오십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아이에게 무어라 무어라 하십니다. 내려 보려다가 어른이 나가면 일이 더 크게 될 수 있어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이 말이 절에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된다고, 왜 묻지도 않고 들어갔냐고, 혹 스님을 만나진 않았냐고 야단을 치시더라네요. 절이 사람이 오라고 있는 곳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우리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 잔소리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박장대소~~~.
 
봉암사에 다녀왔다는 말에 놀러온 큰 시누이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합니다.
 
거기 일반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요.
엥? 왜?
 
봉암사는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이라 일반인들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이랍니다. 그 산은 희양산인데 산행을 한다 해도 절 근처는 막아놓아 들어갈 수 없게 해놓았답니다. 산을 좋아라 하는 시누이 남편은 그 근처를 몇 번 지나갔지만 절에는 들어가 볼 엄두도 못 내었다고……. 유홍준 선생이 문화유산답사기를 쓰기 위해 들어가려했지만 결국 못 들어간 유일한 곳이라고…….
 
그래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읽으며 읽으며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그래서 이런 느낌이 들었었구나.
아, 이런 사연을 가진 절이었구나!
 
다시 듬뿍듬뿍 느끼며 봉암사 부분을 읽었습니다.
 
사월초파일 단 하루만 개방한다는 봉암사. 겨울의 봉암사 사진은 정말 흔치않은 사진이겠지요? 보고오지 못한 보물들도 있고 느끼고 오지 못한 보물들도 있지만 눈 쌓인 봉암사를 휘휘 노닐고 다닌 엄청난 사실과 이 사진들이 있으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용감해서 행운을 얻었다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제 마음 한 켠은 이렇게 이야길 합니다.
 
봉암사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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