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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의 바깥에서 옛집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현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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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짧은 남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진안 마이산과 선암사, 땅끝 해남에서 보길도 그리고 완도를 거쳐 강진의 다산초당까지.
 
재미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 역사 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 윤선도와 정약용의 거처가 보여주는 그들의 성격차이가 여실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윤선도와 정약용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라 그 느낌은 더욱 강렬했지 않나 싶습니다. 
 
윤선도의 낙서재, 곡수당과 윤선도가 매일 올라갔다는 산중턱의 정자 동천석실을 보면서 그 먼 섬에서 호위호식하며 완전 왕노릇하고 살았구나… 어국총어국총지사와… 한가로이 노 젓는 소리나 즐기며 하인들 꽤나 부려 먹었겠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 보이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나 등등. 동천석실에 앉으면 마을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산중턱에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정자 자체가 홀로 고고히 서고자하는, 하지만 결코 은자는 되고 싶지 않은 윤선도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반면, 정약용의 다산초당은 초당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따스하고 예쁘고 정겨운 곳이더군요. 산 속 깊이 들어앉아있는 이곳을 보니 다산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을 다스리고 연구하는데 더욱 마음을 쓴 듯싶었고 구석구석 다산의 손길과 마음이 닿아있는 듯해서 오래 앉아있고 싶은 편안함도 느껴졌습니다.
 
윤선도가 매일 오르내린 산이나 다산초당이 있는 산이나 햇빛 들지 않는 우거진 산임은 같은데 윤선도의 그 산은 왜 그리 습한지……. 햇빛이 안 드니까 그런 거야 남편이 얘길 했지만 그 산은 봄임에도 봄이 오지 않은, 늘 늦가을의 눅눅한 그런 곳 같았습니다. 다산초당의 산을 보니 그 차이가 더욱 확연해졌는데 이곳도 산이 우거져 햇빛이 들지 않는 건 매일반인데 전혀 축축하지 않고 따스하고 온화한 느낌이었습니다. 
 
윤선도가 그 산을 매일 오르내리며 그 곳의 경치를 즐긴걸 보면 그 분의 성향이 그 산처럼 음습하지 않았나, 어쩌면 현실을 초월한 듯하지만 마음은 현실에 대한 패배감이 그를 지배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해보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때의 느낌들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이 그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가 즐비한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조선의 학자들은 집을 지으며 자신의 철학을 담았더군요. 집의 구조 속에, 집의 위치 속에 그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가 보이는 건 그래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던 게지요.
  
해상의 도학자 윤선도편과 이곳에서 노래 부르고 이곳에서 곡하리라 다산초당 편을 읽으며 제가 가졌던 느낌들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졌습니다. 물론 윤선도의 생각과 이야기를 알고 나니 거칠었던 느낌이 이해의 끄덕거림으로 발전했답니다.
 
성리학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무극태극에 대한 논쟁, 사단칠정논쟁 등등의 다양한 논쟁이 있었고 학자들만의 입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논쟁 속에 정치가 있었고 학파가 생겼고 숙청과 사변이 있었습니다. 영광과 고난이 반복되면서 한 사람의 의식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그 변화는 글로도 말로도 나타나지만 건축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의 성리학자들, 성리학자이면서 건축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의 집을 찾아 당대를 풍미했던 그들의 사상과 철학과 숨겨진 마음까지 느껴보게 합니다. 
 
건축가이면서 시인인 작가의 글 솜씨에 가끔은 그 집의 정취와 풍광이 절로 그려지기도 하고, 이 책을 쓰기위해 옛집을 찾고 그 집을 지은 사람의 생애와 그들의 철학을 공부하며 6년간이나 준비한 작가 덕에 성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까지 얻게 됩니다.
 
옛집의 바깥에서 옛집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현재를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집이 아니었습니다. 담장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도 사상이 깃들여있었습니다. 그저 즐기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옛사람의 자취 속에 그 사람이 존경하고 숭상했던 그 이전의 옛 성인에 대한 흠모와 존경도 담겨있었습니다. 위엄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삶이 꾸려지는 곳에 대한 고민과 실용적 요소가 함께 놓여있었습니다. 자연과 어울려 자연의 일부가 된 집도 있고 자연 속에 자연을 활용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집도 있었습니다. 산과 물은 건축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바람과 소리조차도 기본 구조가 되었습니다.
 
나의 집을 들여다봅니다. 나의 집은 같은 모습을 가진 36개의 집과 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저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층에 따라 햇빛과 바람의 드나듦이 조금씩 다르겠지요. 옛 사람들과 다르게 바깥주인보다는 안주인의 취향에 따라 집 안의 분위기는 더욱이 다르겠지요. 하지만 우리네 집들은 고민의 깊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철저하게 나를 형성하는 나의 삶의 방식과 사고에 대한 깊이가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집에서 무엇을 구현해낼 것인가……. 
 
그래서 요즘 제가 청소를 참 열심히 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치웠던 예전과 마음을 달리 가졌습니다.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마음은 바꿀 수가 있습니다. 청소를 하며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흩어졌다 다시 앉는 먼지들을 다시 앉지 못하도록 닦아내며 내 마음의 어느 부분이 그리 흩어지는 듯하지만 다시 가라앉아 덮개를 이루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봅니다. 치우면 다시 어질러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그 어질러짐에 반응하는 짜증을 몸 한 번만 더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풀어냅니다. 놓여있어야 할 곳에 놓여 있지 않아 찾을 때의 정신 사나움이 약간의 정리 속에 여유로 바뀝니다.
 
치열한 학문 속에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갔던 옛 성인들, 그 철학을 집으로 풀어낸 옛 성인들의 깊이를 감히 따라갈 수 없지만 책을 통해 슬그머니 맛 본 그 분들의 세계가 제게는 소박한 생활 속의 마음 다스림으로 내려앉았으니 좋은 책을 읽는 일은 제 세상살이에 절대 놓을 수 없는 일이라 다시금 깨달아봅니다. 함께 하자고 자신 있게 권할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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