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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허망하게 죽어간 영혼 모두를 아우르는 진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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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왔던 영화 ‘지슬’은 제주 4.3 때 이유도 모르면서 죽어간 3만이 넘는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은 4개의 단원으로 나누어 풀어나가는데 그런 방식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다. 그 동안 막연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조상님의 제사를 모셨던 행위를 돌아보며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神位’(신위 : 영혼을 모셔 앉히다), 
‘神廟’(신묘 : 영혼이 머무는 곳), 
‘飮福’(음복 : 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눔),
‘消紙’(소지 : 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 등 4개의 소제목을 달아 진행한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영화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 ‘지슬’의 감독 오멸은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요즈음은 제사 때 울지 않는다. 친척들도 만나고 웃기도 하는 또 다른 축제가 됐다. 우리 영화도 중간 중간 웃으면서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제사 자체가 슬픈 것일 뿐”이라고.
 
그래서일까. 3만여 명의 생명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실화를 다룬 영화라서 무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중간 중간에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반전의 장면들이 더러 있어 지루하지도 않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1948년 11월에 제주에 미군정으로부터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소개령의 내용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지침, 즉 군 토벌대에 이들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어느 허름한 집 대문 안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제기 그릇들을 클로즈업 하여 보여준다. 감독이 “첫날 연출부에게 프롤로그에 쓸 소품으로 그릇들을 구해오라고 했는데 그들이 빌려온 게 우연히 모두 제기였단다. 그런 연유로 지방을 써서 문에 붙여 촬영감독과 간소하게 제를 지내고 음복한 후에 촬영에 들어가곤 했다니 망자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영화를 만든 셈이다. 촬영장에서 항상 막걸리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누군가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언제나 지방지를 준비하게 된 것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하나의 제사였는데 영화의 시작과 끝이 됐다”고 한다.
 
   
 
신위를 모신 지방이 타들어가면서 보여주는 불꽃이 그들의 영혼인 듯 느껴지고 이런 연출이 우리네 정서인 한(恨)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동서양이 모두 같은가 보다. 유명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 공감해서 많은 상을 준 것을 보면 말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 폭도라 말하기에는 정말 따뜻하고 순수한 감성을 지닌 우리 엄마 아버지, 오빠, 동생들과 다름없는 이들이 하루아침에 폭도라고 규정지어져 동굴 속으로 토벌대를 피해 피난 가는 모습이 너무나 애절해서 가슴이 저려왔다.
 
피난처인 동굴 안에서 그들은 먹을 것 (감자)을 나누고 농담도 하고, 친일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가족들을 괴롭혔던 이웃까지도 모두 지난일 이라고 용서해주는 정말 순수한 양민들인데 토벌대를 앞세워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켜 같은 민족한테 총부리를 겨누게 한 그들의 만행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시기에 군 입대를 한 죄 밖에 없는 어리기만 한 군인들한테 양민을 학살하도록 해서 그 어린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준 토벌대장등 그 당시 미군정의 명령을 받아 야만의 행위를 저지른 위정자들한테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 한번 못 받고 오늘까지도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멸 감독은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서 허망하게 죽어간 영혼 모두를 아우르는 진혼제를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토벌대나 양민 어느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죽은 시체에는 반드시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를 올리고 소지(消紙)를 행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져 아름답기까지 하다.
 
   
 
흑백영상이 이토록 아름답다고 느껴보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에서 흑백과 칼라로 교차편집을 했던 그 영화에서의 흑백장면이 유난히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은 나에게 그 때의 기억을 다시 새롭게 해주었다.
 
제주 겨울의 스산한 풍경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소리, 돌로 된 담장의 묵직함과 눈 쌓인 제주 오름의 황량한 풍경들을 카메라는 담백하게 읽어낸다. 참고로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은 개봉에 앞서 독립영화계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따냈다고 한다. 제주도민의 가슴 아픈 역사의 단초를 불러온 미국, 그 나라의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오멸 감독이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만큼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있을까? 한번 씩은 다 주어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죽음의 질은 각기 다를 것이다. 전쟁이나 재난, 사고 등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맞게 되는 죽음이 야말로 가장 억울한 죽음일 것 같다. 우리가 평생(80세를 기준)을 살 때 태평성대만을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로운 국가이면서 정치 또한 선진국인 유럽 쪽 국가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준 전시상황이니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울게도 하고, 웃기게도 만든다. 영화 관람을 계획하면서 감상 후 많이 우울하지 않을 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물론 기우였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할 슬픈 우리의 역사, 이 영화는 1948년 그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3만이 넘는 제주 4.3 피해자들의 영혼을 따스한 시선으로 위로해준다.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들고 있음은 아픈 역사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은 영혼을 울리는 귀한영화 맞는 것 같다. 별 다섯 개 만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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