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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는 아무 것도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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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영화 개봉일이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하루 당겨졌다. 늘 출근 준비하면서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오전 7시뉴스를 시청하는데 뉴스시작해서 10분까지는 영양가도 없으면서 내 영혼을 갉아먹는 내용들이 많아 일단 무음으로 보다가 보기 싫은 얼굴들이 나오면 고개만 다른 곳으로 돌리곤 한다.
 
10분 정도 지나서 소리를 키우고 유익한 정보는 골라서 머릿속에 저장된 잡동사니 폴더를 열어 저장해 두고는 한다. 목요일엔 주로 영화나 연극 등 공연정보를 알려주는데 이번 주에 개봉할 영화들을 소개해준다. 기자가 짧게 소개해주는 영화들의 일부분만을 봐도 이젠 대충 감이 온다.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영화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영화, 아예 관심이 안가는 영화 이렇게 세 가지로 말이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 압권은 ‘대부’ 로 선정해놓았다. 1970년대 만들어진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으로 복원한 ‘대부’ 기대감으로 인해 잠시 흥분이 밀려왔다. 세 번 이상 보았던 영화이기도 하고 비디오테이프도 소장하고 있을 만큼 아끼는 영화가운데 하나다. 이제 다시 DVD를 구입해야겠다.
 
   
 
전국에서 15개관만 개봉을 했기 때문에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일산 CGV에서 저녁 8시50분에 시작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는 거의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세 시간 가까운 런닝타임이 30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집중해서 관람하고 나니 온몸이 약간 경직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화 ‘대부’내용이야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나이 든다는 일이 그다지 나쁘지 않음은 영화나 책이든 고전을 다시 접할 때 그냥 스쳐지나갔던 장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마피아 두목을 하면서도 기대했던 셋째 아들은 상원의원이나 판, 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마음. 부패한 권력 앞에서도 당당한 마피아지만 그들은 메이저 인생이고 마피아 자신들은 마이너 인생임을 스스로 단정 짖는 모순된 행동을 보며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비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대한민국에서는 중, 고 6년 동안 피터지게 공부해서 일류대엘 합격하면 인생 60년이 달라진다고 목 아프게 설명해도 어릴 때의 자녀들은 그 말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깨닫는다.
 
물론 올바른 교육의 길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일 뿐이다. 요즈음 대한민국에서 돈 다음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길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진정한 부모는 사라지고 학부모만 남아있는 시대라고 하나보다.
 
잠시 샛길로 빠졌다. 비록 꼴레오네 패밀리는 마피아이지만 비토 꼴레오네에게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망치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가 되었던 비토는 패밀리의 사업이 다른 미국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다. 그가 자신의 가족을 지켰듯이 그의 패밀리가 패밀리의 가족들을 지키고, 또한 그 외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 비토 꼴레오네는 자신에게 들어온 마약 사업 제안을 거절한다.
 
   
 
비토역의 말론 브란도의 연기는 다시 봐도 압권이다.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때부터 꼴레오네 가문의 비극은 시작된다. 돈 꼴레오네(비토)가 마약 사업을 거절하자 다른 패밀리에서 비토를 암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다. 
 
대부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에 경악한 꼴레오네 패밀리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제 비토의 셋째 아들 마이클이 등장한다. 마이클역의 알 파치노의 젊었을 때 모습을 다시 보니 참 신선하다. 신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신 선물은 세월과 죽음이다란 말이 실감난다. 세월 앞에 그 누구든 장사가 없고 죽음만큼은 피해갈 수 없으니 말이다.
 
   
 
마이클은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존경하지만 결코 대부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다니고 군대에도 입대했었던 마이클은 마피아를, 그들의 사업과 그들의 방식을 거부한다.  
그런 마이클이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자 변하기 시작한다. 그토록 강인하던, 아버지가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마이클은 직접 총을 들고 시내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침착하게 아버지의 원수들을 쏴 죽이면서 폭력은 악순환된다.
 
영화 ‘대부’는 폭력으로 지키려 했던 자신의 가족이 그 폭력으로 인해 겪는 비극을 장엄하게 다룬 드라마이다. 비록 그들의 모습이 위엄 있고, 의리 있고, 남성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어 보여도 결국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폭력을 이기는 일은 용서와 화해일뿐이다. 나그네의 모자를 벗기는 방법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임을 동화를 읽은 초등생 어린이도 다 아는 사실이다.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자는 폭력으로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사인 파라마운트사에서 제작했던 영화 대부를 각고의 노력 끝에  디지털로 복원 시키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설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 분 덕분에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관객과 영화인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다시 영화관에서 ‘대부’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지구인들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일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고 연구하면서 노력하는 선각자들에 의해서 발전해 나가고 지구인들을 괴롭히고 멸망에 이르게 하는 불행한 일은 독재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늘 정치적으로 결론짓는 내가 못마땅하지만 어떤 때는 시적인 활동이 정치적일 수 있고 어떤 때는 정치적 활동이 시적일 수 있다는
 
Sometimes Doing Something
Poetic Can Become Political &
Sometimes Doing Something
Political Can Become Poetic
 
‘프란시스 알뤼스’의 말을 인용해보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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