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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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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이 그랬었죠. 젊은 시절 읽었던 책을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새롭고 그 때 가슴을 울렸던 내용이 오히려 담담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당시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기도 한다고.
 
   
 
제게는 이 조르바가 그러했습니다. 20대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얽매임으로부터의 자유가 크게 보였었습니다. 조르바의 거친 삶 속에 녹아있는 자유와 그 자유를 갈망하는 '나'의 마주침과 어우러짐은 충분히 현재를 내려놓고 떠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만했었지요. 지나고 보면 가장 자유로운 시절이었던 20대에 왜 그리 자유라는 단어 하나에 가슴 뛰었고 왜 그리 자유를 갈망했었는지…….
 
40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조르바를 만나며 거의 밤을 새웠습니다. 여기까지만 읽고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읽기를 그칠 수 없었습니다. 
 
결이 보드라우면서도 풍부한 과육을 볼따구니 잔뜩 부풀려 깨물 때 느껴지는 가득한 전율, 싱싱하고 터질 것 같은 탱탱한 질감.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과 감성이 글 전체에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 야니의 공연을 보며 숨 막히게 느꼈던 지중해의 숨결, 지중해가 아니면 저 풍성하고 섬세한 감성이 어찌 생겨날 수 있었을까 싶었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책 전체가 지중해의 반짝이는 햇살, 터져 오르는 빛살, 살아 숨 쉬는 야생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단어가, 하나하나의 구절이 살아서 제 가슴을 터지게 합니다. 지중해의 바람과 지중해의 공기가 온 몸 가득 스며듭니다.
 
예전엔 소설의 줄거리만 보였었지요. 어쩌면 꼭 읽어야할 고전이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르바의 자유는 부러웠지만 그의 거친 본성이 그리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매력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엔 조르바가 보였습니다. '나'도 보였고 바람 속에 허덕이는 마을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사슬을 채워 길들여진 자아조차도 알아채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헛헛함과 그 헛헛함을 채워가는 일그러진 욕구, 그들을 통찰하며 본성을 따라가는 조르바와 머리를 따라가는 '나'.
 
결국 조르바는 자아였습니다. '나'는 자아를 찾는 여행 속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본성을 만난 것이지요. 조르바와 나는 별개의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본성 조르바가 원초적인 춤을 통해 살아날 때 ‘나’는 온 몸으로 말을 합니다. 거친 자아는 하나하나 끈을 끊고 온전한 자유를 향해 내닫습니다.
 
물론 '나'는 변화가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조르바 이전의 ‘나’와 조르바 이후의 ‘나’는 달라져있습니다. 거친 본성은 자유로워진 자아로 성숙되었고 거침 속의 불안은 통찰과 지혜로 대체되었습니다.
 
내적여행을 떠난 '나'는 이제 세상을 향해 이야기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내적여행은 원래의 나를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창조주가 창조한 그 모습 그대로를 되찾는 일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나의 자유는 본성을 인정함에서 시작됩니다. 조르바가 내 안 깊숙이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함입니다. 인식은 사슬을 푸는 열쇠입니다. 사슬이 풀리고 본성이 자유로워질 때 내 딱딱한 마음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의 '나'를 지키느라 잠시라도 있었을 조르바의 방문을, 철커덕철커덕 빗장이 풀리는 순간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음을……. 이제라도 두려움도, 바램도, 얽맴도 없는 자유로운 나의 여행을 떠나야함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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