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의 서포만필] 운수 좋은 날

오래전 일이다. 

우리집에 아들 친구가 놀러 왔다. 자기들끼리 방에서 한참 쑥덕거리더니 친구가 돌아간 뒤에 아들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 친구가 길을 가다가 몇만 원의 현금과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다는 것이다.

잠시 망설였던 친구는 주운 지갑에서 현금만 꺼내서 자기 지갑에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다가 후미진 곳이 나오자 슬그머니 지갑을 버렸다.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여 교통카드를 꺼내려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찾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자기 것이 아닌, 주운 지갑이었던 것이다.

“갸가 그렇게 정신이 없어요. 주운 돈에다가 자기 돈까지 들어 있는 지갑을 버렸다는 거예요. 흐흐흐.”

아무래도 양심이 걸렸던지라 당황해서 얼른 버린다는 것이 그만 본인의 지갑을 버린 모양이다. 아무튼 정신이 번쩍 나서 허둥지둥 달려가보니 천만다행으로 지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마터면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 놓칠 뻔한 그 친구는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우체통에 넣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 지더라’고 해서 한참 웃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일이지 왜 그랬대?”

“우리 세대 도덕심은 아빠 세대랑 달라요. 내가 잃어버렸을 적에 다른 애들이 찾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순간,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이 생각 났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인천 부평에서 있었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김포까지 개인택시를 타고 왔다. 택시 미터요금이 1만 6,500원이 찍혀 카드로 결제를 했는데 연세가 좀 있으신 택시기사분은 기계가 서툰지 “결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안 된 것 같기도 하네”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내 휴대전화로 결제가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떴다. 기사님에게 문자를 확인시켜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에서 문자가 따르륵 울렸다. ‘결제에 오류가 생겼다’는 거였다. 늦은 밤에 장거리를 태우고 온 나이 지긋하신 운전기사 아저씨가 번뜻 생각났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택시기사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그곳에서는 고객정보를 “모른다”,“또 안다고 해도 알려 드릴 수 없다”며 다른 곳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사정 얘기를 하며 여러 번 전화를 한 끝에 마침내 택시기사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다음 날 아침에 전화해서 어젯밤에 부평에서 김포까지 타고 온 고객이라고 밝히고 “카드 결제에 오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통장으로 택시비를 입금 하겠다”고 했더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크게 감격해 했다. 그분은 “인정이 메마르지 않은 사회” 운운하며 “택시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운수 없는 날이 될 뻔한 택시기사의 하루를 살맛나는 하루로 바꿔준 배려에 내 마음도 덩달아 편하고 따뜻해졌다. 사람 살아가는 과정은 생각하고 행동하기 나름인 듯하다. 나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이 절로 나온다. 거창하게 도덕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굳이 계산하지 않더라도 사람 사는 맛이 나는‘운수 좋은 날’로 바꿔 줄 수 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살맛 나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제67회 농민문학 수필 신인상 당선작. 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