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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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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책 한 권 읽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날 며칠 붙들고 있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들도 있지요. 생활이 무료하고 별 다른 오락거리는 생각나지 않고 머리는 좀 쉬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무협소설입니다. 
 
   
 
무협소설? 예전에 만홧가게에서 빌려보던 무협지가 생각나시나요? 불세출의 영웅이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은 일단 처음에는 순진하고 어수룩하여 뛰어난 점이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 만나는 여자마다 주인공을 좋아합니다. 힘든 일이 계속되지만 그 힘든 순간마다 기이한 무공의 비급을 얻게 되고 둔하지만 성실하여 무공의 고수가 되어갑니다. 한 마디만 하면 풀릴 오해도 절대 변명하지 않으며 대결을 일삼는 고수들도 꼭 등장합니다. 
 
이런 구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무협소설을 소설의 백미로 격상시켜 놓은 작가가 대만의 김용입니다. 소설 영웅문을 시작으로 의천도룡기, 녹정기 등등의 역사적 사실과 어우러진 그만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지요. 홍콩의 일간지 ‘명보’를 창간하여 왼 손으로는 신문 사설을 쓰고 오른 손으로는 무협소설을 쓴다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김용. 중국의 국어 교과서에 그의 설산비호가 수록되기도 했다는데 문학적 가치까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무협지와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제공해주는 것은 맞는 듯합니다.
 
소오강호는 영호충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무림의 정파와 사파가 어울려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읽었던 이 전집을 동생이 보내준 덕분에 새로 읽으며 참 세상살이가 어찌 이리 다를 바 없이 똑같을까 싶었습니다. 늘 정파와 사파가 양립하는 무림. 하지만 정과 사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소오강호는 책을 읽는 내내 질문을 던집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 정과 사, 정당한 목적과 옳지 않은 수단…….
 
우리 사회 역시 무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여러 잣대로 규정을 들이대지만 사실 하나의 잣대에 맞추어질 만큼 사람이 단순한 존재도 아닐뿐더러 다양한 시각의 변동에 따라 잣대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복잡다단한 사회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 쉽고 편하게 양분하기를 좋아합니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즐기며 어울림에 익숙한 영호충의 거리낌 없는 성격은 정과 사를 구별 않고 친구로 만듭니다. 정파의 사람들은 이런 영호충을 두고 사파와 어울리니 정파에 둘 수 없다고 떠들어댑니다. 악독한 무리들과 어울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정파의 사람들, 자신은 옳고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위해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고 사용합니다. 군자를 자처하는 영호충의 사부 악불군은 비급을 얻기 위해 제자를 내치고 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오악검파를 장악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진 좌랭선은 화산, 항산, 태산 등 다른 정파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합니다. 
 
사파에 속하는 일월신교의 사람들은 엉뚱하고 잔인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하고, 죽음까지 감수하기도 합니다. 정과 사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지요.
 
일월신교의 동방불패를 내몰고 다시 교주가 된 임아행을 보면 또 다시 슬픈 사람의 속성이 보입니다. 동방불패가 만들어놓은 교주를 위한 교주에 의한 교주의 정치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한 임아행은 그를 향해 아랫사람들이 외치는 현란한 외침들이 달달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동방불패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분노는 동방불패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사그라들고 그가 만들어놓은 역겨운 아부의 외침을 이제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래, 내가 이 위대한 일월신교의 교주인데 저 정도 나를 기리는 말들이야 들을만하지…….
 
그의 위태로운 생각의 시작입니다. 이제 동방불패에게 밀려 호수 밑바닥의 축축한 감옥에서 보낸 세월은 까맣게 잊혀져갑니다. 오로지 그의 마음에는 하늘 아래 한 사람,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 욕심은 분란이 일어난 오악검파를 장악하고 소림과 무당까지 지배하고자합니다. 그의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영호충이 일월신교에 들어오길 거절하자 당연히 그를 죽일 생각까지도 합니다. 영호충을 후계자로까지 생각했던 마음은 욕심 속에 슬그머니 사라지고 잔인함만 남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봅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더 오르고 싶은, 가져도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단 한 가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꼭대기에 오르기 일보 직전 그는 수명이 다하여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하나, 수명입니다.
 
죽으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금은보화를 쌓고 아무리 천하권력을 가져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동등한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진작 내려놓고 마음을 따라, 순리를 따라 지낸 영호충은 결국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나눠놓은 분파의 강령이 아닌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기본 원리에 충실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결과는 현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다움보다는 자신이 속한 ‘파’의 이익에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을 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불합리한 구조로 움직입니다. ‘파’를 떠나 음악을 통해 진정한 친구가 된 유정풍과 곡양은 이 불합리한 구조를 타파할 힘이 없기에 스스로 강호를 떠나고자 했습니다. 강호를 벗어나 서로 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여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지요. 하지만 강호는 이들의 떠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선례를 남기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함께 만든 곡 ‘소오강호’를 연주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누가 강호를 비웃는가…….
 
영호충과 영영은 모든 것을 다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둘은 소오강호를 연주하며 자신들이 꿈꾸는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강호의 권력과 욕심은 자기들 것이 아니기에 자기들처럼 야망과 욕망보다는 바름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맡깁니다. 그 세상이 계속 그렇게 순조롭게 돌아가기를 바라며 그들은 그들의 소소한 낙원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강호는 조용해지고 평화로워집니다.
 
저는 현실에서도 늘 이러한 결말을 꿈꿉니다. 사람이 사람이어서 아름다운 세상,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는 세상, 잘못이 잘못으로 드러날 수 있는 세상, 불의에 내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는 세상…….
 
우리들도 모두 강호에 던져진 사람들입니다. 불세출의 비급도 얻지 못했고 그럴듯한 가문에서 태어나지도 못했는데 자본주의의 삼시뇌신단을 이미 복용했습니다. 삼시뇌신단은 일월신교에서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먹이는 약입니다. 일 년에 한 번 해독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무서운 약이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번 해독제를 얻기 위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살아내야 합니다. 돈과 권력의 세계로 끊임없이 다가서야만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독약을 주는 계층은 늘 같은 계층입니다. 애써도 애써도 해독약을 주는 계층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꿈과 다른 현실이기에 재미로 읽은 무협소설이 마음을 아프고 씁쓸하게 합니다. 국가는 반드시 정의로워야 하고 법은 약한 사람의 편이어야 한다는 정직한 생각은 이제 낡은 가치가 되어가는 것일까요. 무림의 약육강식이 우리 사회에서도 실제 적용되고 있음이 참으로 슬픕니다.
 
누가 강호를 비웃는가…….
 
삼성의 손자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되는 그런 강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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