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김포문학상 대상에 시 부문 김영욱 「문워킹」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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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여편 출품, “완성도 높아 우열 어려워”
김포우리병원 문학상 예산 매년 지원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가 주관하여 전국공모로 진행된 제23회 김포문학상 대상에 김영욱 시인(남양주시)의 ‘문워킹’ 외 4편이 대상에 선정돼 상금 500만원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우수상에는 시 부문에 안규봉(부산시 연제구)의 ‘빛나는 워터멜론’ 외 4편이 선정됐고, 수필 부문 우수상에 민병일(광주광역시 북구) ‘나의 디오게네스 나무’ 외 1편, 소설부분에 정민석(김포시)의 ‘심심한 웃음’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상금 100만원과 상패가 수여된다. 이외에도 시 부문 신인상에 조인숙(김포시)의 ‘봄 밤’ 외 4편, 수필 부문 홍봉호(김포시) ‘가정환경조사서’ 외 1편이 선정돼 상금 50만원과 상패를 수상한다.
이번 제23회 김포문학상 전국공모에는 시부문 192명(960편), 수필부문 67명(134편), 단편소설부문 79명(79편)과 신인상부문 15명 등 총 353명의 작품 1,230여 편이 접수됐다.
심사는 1차와 2차로 나누어 진행하였으며 본심 심사는 뛰어난 언어감각과 삶에 대한 통찰 및 깊은 사유의 시세계를 구축해온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과 2013년과 2016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에 선정된 바 있는 정용준 소설가(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가 맡았다. 김포문학상 예심심사와 신인상은 송병호시인 외 지역 문인 5인이 위원을 맡아 진행됐다.
나희덕 시부문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김포문학상은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높았고 작품성이 좋아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이 다양하고 작품의 완성도가 고른 편이었다”고 밝혔고 소설, 수필 부문 정용준 심사위원은 “기술이 발전하고 첨단의 세계 속에서도 문학은 바다 위 부표 같은데 사유와 의미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려는 분투가 김포문학상을 통해 드러나 고마웠다”고 했다.
김포문학상은 김포의 문학발전을 도모하고자 2001년 제정되어 올해로 23회째를 맞았다. 우리의료재단 김포우리병원(이사장 고성백)이 문학상 상금을 매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는 우리의료재단 김포우리병원이 (재)김포문화재단에 지정 기탁한 기부금으로 진행됐다.
권영진 김포문인협회장은 소감을 통해 “전국에서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당선되신 여러분들께는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히 전국공모로 확대되면서 문학상의 권위와 격을 높이기 위해 아낌없는 후원으로 문학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료재단 김포우리병원 고성백이사장님의 지원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한편 시상식은 12월 7일(토) 오후 4시 김포시민회관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제23회 김포문학상 詩부문 본심 나희덕 시인 심사평
제23회 김포문학상은 산문부문보다는 시부문이 응모자도 많고 전반적인 작품 수준 역시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시, 소설, 수필 장르별로 각 1명씩 우수상을 선정하고, 대상은 시부문에서 선정하기로 쉽게 의견을 모았다. 시부문은 전체 190명의 응모자 중에 42명의 작품이 예심을 거쳐 본심 대상작이 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이 다양하고 작품의 완성도가 고른 편이었고, 5편씩 투고를 했기에 응모자의 장단점이나 시적 역량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진 여섯 분의 시를 두고 적지 않게 고심했다.
대상으로 선정한 <문워킹> 외 4편은 스케일이 크고 활달한 상상력과 발랄한 언어감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시에 담긴 내용은 어둡고 우울하다. 묵시록적 이미지들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 지구의 위태로운 상황을 다급하게 타전하고 있다. <문워킹>은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를 통해 “아이도 / 여자도 남자도 없고 / 흑인도 백인도 고통도 없고 / 앞발이 긴 토끼들뿐인 네버랜드”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지구와 달의 관계로 확장한다. “뒤로 걸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마를 다시 배웠지”라고 말하는 화자는 문워킹으로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보름달물해파리>에서는 “얼음쐐기로 모스부호를 보내는 북극해의 양수가 ” 터지고, 성장판이 닫혀 있는 바다 위에서 “보름달은 열대야에 어울리는 야광해파리로 무럭무럭 퇴화 중”이다. <코뿔소와 천사>에 펼쳐진 ‘나’와 ‘너’의 대화나 <스발바르>에서 낯선 지명을 두고 이어지는 생각들 역시 불편한 의심이나 몽유의 기록에 가깝다. 이러한 기묘한 어긋남의 연속이 시를 끝까지 긴장감 있게 이끌어간다. 행성적 상상력으로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리드미컬하게 드러내는 이 아이러니 시편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우수상으로 선정한 <빛나는 워터멜론> 외 4편은 일상의 평범한 풍경을 감각적으로 변용하면서 시상을 속도감 있게 밀고나간다. <빛나는 워터멜론>에서 “감각이 슬픔을 개량할 때까지 / 이 세계의 구성 방식이 간결해질 때까지” 풍경을 이루는 존재들은 끊임없이 자라고 달리고 흐른다. 이 유동적 풍경 속에서 사라지고 지나가는 존재들은 ‘-되기’를 거듭하면서 “은유가 되고” “수수께끼 방정식이 되고 / 품을 수 없는 이름이” 된다. 이 시가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나머지 시편들도 이질적인 시어들을 환유적으로 연결하면서 전개하고 있지만, 표제작에 비해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헬스 클럽>의 ‘신’과 ‘회원’의 관계, <가정법원>의 ‘과학자’와 ‘수학자’, <조깅>의 ‘양자역학’과 ‘국가’ 등은 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느낌이 든다. 이미지와 사유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굴려가는 힘과 속도를 지니고 있으니, 여기에 응집력이 좀더 생기면 좋겠다.
아쉽게도 수상작에 들지는 못했지만 <불면을 세다가> 외 4편, <접촉은 접속을 오해해요> 외 4편, <새점> 외 4편, <바슐라르 건널목의 아이> 외 4편 등도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고, 만만치 않은 시적 역량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수상하신 두 분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이 네 분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약력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2001.9.- 2019. 2.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2019. 3.-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그녀에게>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등과 산문집 <반 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 등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문명의 바깥으로>, 편저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유리병편지> 등 출간. <창작과비평>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역임.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김달진문학상, 이산문학상, 지훈상, 미당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백석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영랑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제23회 김포문학상 소설·수필 본심 정용준 소설가 심사평
김포문학상에 투고된 소설과 수필을 읽었다. 눈 밝은 예심위원들이 선택한 원고들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작품마다 작가의 삶과 문학성이 스며 있었다. 때문에 심사 내내 좋음들 속에서 더 좋음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웠다. 원고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동안 느낀 건 문학의 의미와 가치였다. 기술이 발전하고 첨단의 세계속으로 온 인류가 앞으로만 달려나가는 것 같은 어지러운 감각 속에서도 문학은 망망한 바다 위에 뜬 부표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피고 그 삶에서 건져올린 사유와 의미를 언어를 통해 표현하려는 분투가 고마웠다.
단편소설 <소설과 나>는 발상이 좋았다. 언뜻 보면 소위 AI 관련 안드로이드 서사의 전형처럼 보였지만 중심인물이 소년을 원하는 것과 그 사연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전개를 통해 적절하게 사연을 알려주는 방식도 좋았다. 다만 중반 이후에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재가 갖는 개연성을 잃고 감상적으로 빠진 것은 아쉬웠다. 중반 이후의 서사성을 강화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단편소설 <심심한 웃음>은 안정적인 문장이 돋보였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을 통해 시작되고 끝나는 서사형식이다. 때문에 문장은 진술해야 하고 묘사해야 하며 때로는 설명하고 설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소설들이 문장의 이런 기능을 간과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는데 이 작품은 진술이 탄탄했고 묘사가 정확했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비정한 세상을 경험한 두 청춘이 서로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받는 이야기다. 청년들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생성되는 모종의 감정과 분위기도 잘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해진과 현우에게 부여한 상황은 좋았지만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파고드는 부분이 얕게 느껴졌다. 바다 장면은 좋았으나 바다의 역할이 청춘서사의 전형처럼만 활용되는 듯 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라도 보완되면 좋을 것 같다.
수필 <도마>는 형식이 독특했다. 나무를 의인화해서 도마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지점이 좋았다. 시각과 시선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인식과 사유의 새로움도 신선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함께 투고된 수필 <묵은 솜이불>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가 자의적 감각에만 머물지 않고 문학적으로 확장되는 고민을 조금 더 하면 좋을 것 같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나의 디오게네스 나무>는 필자의 사유가 매력적으로 보여지는 작품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어가면 비로소 나는 사람이 된다.’는 첫문장의 선언적인 힘이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철학적이고 원형적인 인식에까지 이르고 싶은 필자의 자긍심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디오게네스와 잘 어울리는 글이었다. <길과 깊 사이의 낯선 길, 허물>도 인상적이었다. 매미의 허물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삶의 자리를 살펴볼 수 있었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안쪽에 숨은 내면을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김포문학상에 응모해준 많은 작가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계속 쓰고 읽으면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되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오래 오래 같은 마음이길 소망한다.
[정용준] 소설가. 2009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음. 소설집<선릉산책> 장편소설<내가 말하고 있잖아> 산문집<소설만세> 등을 펴냈음.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문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젊은예술가상 수상.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직중.
2024년 김포문학상 신인상 심사평 - 그냥 그런 것들이 영혼은 일깨우는 지혜와 같아
우리가 살아가는데 행복의 모양은 다양다색이지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자녀가 잘되는 것, 남다른 재능을 가진 것 등, 그러나 참된 행복은 그처럼 틀에 박힌 것들이 아닐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런 것들이 나 자신에게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가는 그 소재가 창작이라는 이상 안에 있다. 그래서일까? 문학인의 상상은 언제나 선하고 맑다.
금년 김포문학상 신인상 응모자는 평년 수준으로 수적 부족함은 없었으나 작품성에서는 작년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따라서 몇 작품을 두고 번갈아 고민하지 않고 일찌감치 최종 당선자를 추려낼 수 있었다.
물론 신인상이란 점에 무게를 두고 심사에 들지만 어느 정도 애써 습작한 흔적을 살펴본다. 금년에는 시에서 한사람과 수필에서 한사람, 두 분을 최종 선에 올린다.
먼저 시인상 시부분의 시 [봄밤] 외 4편의 작품으로 신인상에 당선된 조인숙씨에게 당선을 축하드린다. 노랫말처럼 흥얼거리며 ‘달달한’ ‘여백을 채워’가는 ‘코러스가’ 어찌 ‘찻잎을 우려내’는 ‘박동새’며 ‘눈물’ 의 ‘감정’뿐일까? 7연이 따로따로인데 끌리듯 빨려든다. 단연 당선 수상작으로 꼽는다. 나머지 3작품은 시적인, 시적 의미를 실루엣처럼 품고 있다. 그중 맨 마지막 작품 [빈 의자]는 심사위원 눈에 여러 번 눈길이 간 작품이다. 다만 끝부분에 “한 줌”이란 표현은 시언어에서 기피 하는 관념어에 속한다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란다. 응모자들로의 편차가 심한 데서 참신한 시인을 찾아냈다는 점에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의 발전이 빛나게 점쳐진다. 무엇보다 꾸준히 다작하는 습관을 주문하고 싶다.
신인상 수필 부분은 [가정환경 조사서] 외 한편을 낸 홍봉호씨에게 수상의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이 오래전 수필을 배운 적이 있었다. 대게 작품을 보면 작가의 환경을 읽을 수 있고 작가는 당신을 쉽게 노출하고 만다. 연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과 사건의 전개이다. 이번 당선인의 작품은 두 편 모두 심사위원이 배웠던 틀과는 달랐음에도 특히(대화형식에서) 매우 사실적 친근감이 다가온다. 소설형식이면 어떻고 형식이 그리 중요한 건지는 심사원원이 더 공부해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해 본다.
한편 수필은 정情의 문학이며 서사의 문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에 치우치면 서사가 죽고 만다. 이야기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올 때 수필은 읽는 맛이 배가 된다. 시와는 달리 수필은 착 달라붙는 끈적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이번 수필부문 당선작이 범주에 드는 모범 답이 아닌가 하고 무릎을 친다. 문체를 보아 연세가 지긋하신 분으로 이해되지만 앞으로 수필가로서의 살아온 시차적 여백을 아름답고 진솔한 글체로 한 획을 긋는 대작가로의 대기를 기원한다.
이제 시작이다. 따라서 유명한 시인이나 수필가나 그런 이름보다 훌륭하고 정직한 시인으로 작가로 내 글을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잘 가꾸고 키워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시인, 시차의 여백을 사유하는 수필가로 우뚝 서기를 충심으로 기대하고 축원한다. 선에 들지 못한 여러 응모자에게도 진심으로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끝으로 무엇보다 심사평의 지면을 빌어 그보다 김포문인협회 고문의 자격으로 감사한 것은 김포문학상 본상 상금과 신인상 상금으로 적잖은 1,500만원 전액을 김포사랑, 김포문인협회 사랑이라는 따뜻한 정하나로 후원해주신 우리의료재단 김포우리병원(이사장 고성백)에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을 꾹꾹 담아드린다.
-신인상 심사위원 (송병호 최의선 최종월 심상숙 신금숙 김근열 )
제23회 「김포문학상」 전국공모 대상 詩 「문워킹」외 4편 김영욱 당선자 수상소감
어쩌면 시를 쓰는 것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억울해도 하소연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겨우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누구 하나 그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며 물러섭니다. 제가 글을 쓰겠다고 펜을 잡은 지가 올해로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글의 정신’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어떤 글감을 취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 자신이 오래도록 그저 글 쓰는 멋에 취해 있던 건 아니었나,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뜻밖에도 삶의 늪에 빠졌을 때 주어졌습니다. 펜을 놓고 신산한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지요. 그곳은 삶과 죽음이 줄다리기하는 신의 관할 영역이었지만, 연옥의 밑바닥에서 인간 군상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제게 글쓰기란 무엇일까요? 제 안에 계신 비정한 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왜 써야 하는지, 써야 한다면 그것이 제 소명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확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목소리를 갖고 있어도 그 자신의 슬픈 사연을 노래로도 부르지 못하는 얼굴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야 할 의무가 제게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후 편견과 오만을 버리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자, 시나브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천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낮지만 높고, 깊지만 넓고, 참혹하지만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은 태도로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적으려고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대상 선정 소식을 듣고, 시인으로 거듭나는 일이 저 혼자만의 과업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김포문학상에 응모했던 다섯 편의 시 속에 깃든 목소리들의 영혼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제 부족한 시편들을 살펴보시며 저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필경사’ 의 자격을 인정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문학이 무용하게 평가되는 이 수상쩍은 시절에도 오래도록 문학상을 알차게 꾸려오신 김포문인협회와 이를 후원해 주신 김포우리병원에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시 쓰는 일이 부끄럽지 않도록 올곧은 사람의 딸로도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영욱]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 인하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 박사 수료. SK해운 및 출판사에서 근무 건국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 역임. 현재 그림책 연구자 겸 아동청소년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시산맥> 필명 김이응으로 등단. 2024년 <경북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로 등단하였다. 수상경력으로는 제1회 직지신인문학상 시 당선(2018), 제1회 한탄강문학상 대상(2021), 웅진문학상 대상(2024) 등이 있다.
제23회 김포문학상 대상 작품
문워킹
김영욱(필명 김이응)
흑백텔레비전 안에서는 흑인이었지
자꾸자꾸 볼수록 백인이 되었지
아픈 아이들이 있으면
한달음에 아프리카로 달려갔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바꿔야 했지
‘세상을 고쳐주는(Heal the World)’ 노래는
위험한 수술
혹은
위험한 주술
지구가 이미 늙은 가수라면
달은 스토커
들키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가면을 바꿔야 했지
아폴로 11호를 처음 본 열한 살의 여름,
카메라를 들고
무중력 비행 중인 파파라치들은 위장 취업 중,
한 옥타브씩 올라가봤자 별 볼 일 없으니까
문 뒤에는 빨간 안경을 쓴 토끼가 있으니까
자동차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당신들이 돌아왔으면 좋겠어(I want you back)’라고
쏟아지는 별들을 위해
쓰러지는 아이들을 위해
먼 미래의 신이거나 외계인을 부르는 목소리로 노래 불렀지
중력에 끌려 추락하지 않게
중상모략에 걸려 추접하지 않게
밤무대보다 거대한 침대 위에서
흰 그림자와 검은 그림자의 손을 잡고서
뒤로 걸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마를 다시 배웠지
신발의 뒷굽을
탁, 탁, 치면
아이도
여자도 남자도 없고
흑인도 백인도 고통도 없고
앞발이 긴 토끼들뿐인 네버랜드
누가 달에 다녀갔을까,
흑백 사진 속에
남겨진 발자국은 아직도 그대로 있지
#김영욱 #시인 #김포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