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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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말이 험악해질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직업군이 있는데 바로 기자다.
교단에서 교사가 목에 핏대를 세울 때마다 침 폭탄을 맞는 앞자리 학생들처럼 말이다.
막상 담배를 피는 사람보다 바로 옆에서 연기를 들여마실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건강이 더 안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시민과 국민을 상대로 던지는 정치인의 말과 글과 성명과 입장문이지만 표현이 거칠어질수록 1차적인 피해자는 기자들이다.
우리도 오래 살고 싶지만 단명(短命) 1순위 직업군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심각해 3D를 넘어서 4D, 5D 업종이다.
돈도 안 되고 일은 힘들고 사회적인 평판은 '기레기'인데 천날만날 정치인들의 쏟아지는 증오와 냉소를 직접적으로 받아낸다.
젊은 기자는 눈알 돌아가는 기사를 쓰기 위해 거친(?) 발언들을 죄다 살려 그대로 배출한다.
그러면 자신에게는 말이 남지 않기에 그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나이 든 기자는 귀에 거슬린다며 아예 현장에 나오지 않으려 한다.
건강에 안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에 어설프게 낀 나이대의 기자들은 괴롭다.
아직 현장을 버리기에는 미련이 남아있고 그렇다고 그대로 옮겨 적기에는 시민들의 건강이 걱정이다.
듣기도 거북하고 때로는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하루종일 정신이 사납다.
오늘 김포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도 그런 사례다.
그나마 평소 보다는 절제하는 모습이 보였음에도 단어 하나하나가 칼날이다.
"가관이다."
"일개 기초의원이... "
"개념 없고 무능력한 민주당 원내대표..."
정치인도 사람이기에 속에 있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혐오나 증오로 표출되어서는 안 된다.
시의원은 시민들이 4년간 부여한 권한을 적절히 쓰면 그뿐이다.
말의 성찬도 나열도 다 좋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또 동료로서 또 듣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의원들은 서로 우연한 기회(?)에 의회라는 공간에서 만나 일을 하게 되었다.
서로 일을 바라봐야지 사람을 보면 안 된다.
기자도 그렇지만 정치인도 감정을 배제하려면 형용사를 최대한 빼야 한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입술이 떨린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시민들의 건강 이전에 기자들의 건강도 생각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우리도 사람의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구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