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의 서포만필] 김포 제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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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록’
지역 선배님이시고 친구의 형 이름이다. 김포 제일옥 2대 주인이기도 하다. 김포제일옥은 7~80년대 누구나가 인정하는 김포시내에서 최고 맛집으로 유명한 음식점이다. 풍미옥, 진성관, 김포관, 솔밭 등 당시 김포시 관내에서 내로라하는 맛집이 많았지만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루던 음식점이다. 직장인, 김포 5일 장꾼, 농민, 기업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최고의 맛집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한상록 사장이 음식점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창업주이고 대를 이어 2대 사장이었던 것이다.
연세 느긋하셨던 창업주께서는 한 겨울에도 늘 런닝 셔츠 차림으로 손님을 맞았다(당시에 우리는 ‘난닝구 어르신’으로 불렀음). 수더분한 인상과 마른 체형에서 풍기는 인간미가 기억에 있다. 언제나 말없이 눈인사로 손님을 대하는데도 사람들은 누구나 그 모습에 정겨워하고 편안해 했다. 휘황찬란한 간판이나 세련된 종업원이 손님을 맞지 않았다. 화려하거나 품격있는 음식점과도 거리가 있다. 허름한 옛날 기와집에 시골 행랑채 같은 큰방에는 30여 명 그리고 작은 방마다 5~8명 정도 차지하는 방 6개와 주방이 전부다. 주변에는 군청, 한전, 우체국, 평화의원, (구)우파래극장, 이야기다방, 태연약국, 서울여관, 대동철물, 박일사, 태화관, 세명약국, 중구새마을금고 등이 오밀조밀하게 위치해있다.
제일옥 식당의 주 메뉴는 사시사철 단연코 ‘냉면’이다. 그 맛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옳겠다. 비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그 당시만 해도 ‘대표 맛집, 인터넷에 올라있는...’ 이런 부사가 붙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먹어본 사람들의 입과 입에 의해 맛집으로 소문이 난 듯 싶다. 하지만 제일옥 냉면은 한 번 왔던 손님들을 꼭 다시 오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특히 제일옥 냉면 중 물냉면이 단연 압권이었다. 대표 메뉴인 셈이다.
물냉면의 진미는 뭐니 해도 담백한 육수다. 최근 가왕 조용필 일행이 북한 공연을 마치고 평양 옥류관에서 물냉면을 먹고 감탄했다고는 하지만 나름 제일옥 물냉면이 주는 독창적인 맛을 알게 되면 누구나가 그 오묘한 맛에 푹 빠지게 된다. 겨자와 식초를 살짝 넣어 입맛을 돋게 하는 육수 맛은 기가 막혔다.
두 번째는 면인데, 그 쫄깃하고 입에 착 붙는 면이 주는 생명력은 감동 그 자체다. 냉면의 주 원료인 메밀이나 어떻게 면을 만드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면의 특이한 맛이 입에 착 감기는 육수와 결합해 물냉면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싶다.
세 번째는 물냉면에 따라 나오는 잘 익은 열무김치이다. 사시사철 연한 열무김치는 결코 시지도 달지도 짜지도 않다. 한 여름날 점심 한 끼로 열무김치 큰 젓가락으로 물냉면 위에 얹혀 놓고 한입 하는 제일옥의 물냉면 맛은 단연 최고 중 최고였다. 이 집의 맛은 냉면뿐만이 아니라 내장탕과 내장 무침으로도 유명했다. 진한 내장탕 육수와 담백한 내장무침은 퇴근 후 한잔 술로 손님 부르기에 일조했다.
너나 나나 입맛은 같은지라 군청(지금의 시청)과 가까워서인지 점심, 저녁 아랑곳 없이 공무원들이 주 단골 손님이었다. 공무원 인사 발령, 부서 회식, 동호인 정모 등 모임으로는 제일옥이 제일 인기 높은 집이다. 어느 부서에서는 인사발령이 나기도 전에 ‘며칠 후 몇 시에 몇 명이 갈 예정이니 어느 방으로 해달라’는 예약 전쟁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고, 제일옥 예약을 미리 챙기지 못한 부서담당자는 상사로부터 ‘행동이 굼뜨니, 순발력이 부족하다느니, 눈치가 없다느니’ 하는 눈흘김도 감내해야 하곤 했다. 그렇게 김포 중심지에 소재해 있고 상하행 버스 정류소가 지근해 있어 읍내 직장인과 면 소재지 사는 농민들도 많이 찾아오는 사시사철 북적이던 음식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김포제일옥이 변했다. 창업주 어르신이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인 듯하다. 그렇게 문전성시를 이루던 제일옥이 개발과 시대 상황 그리고 군청의 이전 등으로 단골손님 발걸음이 확 줄었다. 그러면서 ‘맛이 옛날 그 맛이 아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제일옥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상록 2대 사장이 다른 곳에 땅을 확보하고 제일옥이라는 이름의 음식점 신축을 추진했다. 순조롭게 제일옥은 건축되었고 준공허가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을 즈음에 문제가 터졌다.
한상록 건축주가 준공 허가 후에 입주를 하는 게 당연함에도 준공 전에 지인들을 불러 입주식을 했다. 건축 감리사가 이를 알고 준공 도장을 찍지 않고 고발을 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었다. 법 위반 사항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때 나는 이 업무를 담당하는 시청의 주택과장이었다.
그 일 후 새로 신장개업한 제일옥에서 자주 음식을 먹었다. 행정청의 잘못은 없었지만 내 업무로 인해 많은 벌금을 물은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도 사실 있었다. 그러나 옛날의 제일옥 그 맛을 잊지 못해서였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언제나처럼 그곳에서 회식을 하는데 한상록 사장이 살며시 카운터에서 보잔다. “지금까지 늘 이렇게 우리 식당을 찾아 주었으니 이제 그 미안함은 안 가져도 되네”, “아우님!! 오늘부로 퉁 쳐줄게”라며 웃으시면서 어깨를 툭 쳐 주시었다.
나는 세월이 흘러 공직에서 정년 퇴임을 했고 참으로 오랜만에 제일옥을 찾았다. 깜짝 놀랐다. 현관문에 큼지막하게 ‘임대’ 방이 붙어 있고 실내등은 꺼진 채 텅빈 주차장이 을씨년스러웠다. “한상록 사장이 오래 전부터 큰 병 치료를 해왔고 얼마 전에 돌아가시어 부득이 세를 놓게 됐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또 한번 깜짝 놀랐다.
김포 제일옥 맛집의 대가 끊긴 것이다. 아쉬움에 마음이 싸해 왔다. 어느 지역에 가면 원조 맛집이니 몇 대째 대를 이어 오는 전통 있는 집이니 하는데 런닝셔츠 원조 회장님의 대가 2대에서 그치고 마음 속 최고의 음식점 제일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김포 제일옥’이라는 유명했던 음식점이었으니 조만간 누군가가 임대해서 음식점 운영은 계속되겠지만 그 맛과 기억 속의 추억들이 얼마 만큼 회복되어 다시 찾아가는 단골집으로 이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허탈한 이 마음을 달랠 방법은 잘 익은 열무김치에 시원한 육수가 있는 김포 제일옥 물냉면이 제격일 텐데... 참으로 아쉽다.
*글 = 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한국농민문학 수필 신인상 당선 작가. 그림 = 최구길
재개발로 헐리기 전 2대 제일옥(2022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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