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특집] 얼굴바위와 돌게장 백반이 반기는 섬, 연평도 - 2
컨텐츠 정보
본문
대연평도 가래칠기해변.
*1부에서 이어집니다.
*다양한 사진과 함께 기사를 읽으실 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없는 걸 찾아야 하는 대연평도
보통 연평도라고하면 그냥 대연평도를 말한다.
대연평도의 면적은 7.29km²로 제법 크다.
우리나라 섬 중 74위의 크기다.
그래서 바닷가가 아니면 육지로 착각하는 섬이다.
섬이다 보니 배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인천에서 연평도로 가는 카페리는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오전 9시 50분 전후로 소연평도에 도착하고 대연평도에서 10시 30분에 인천으로 출발한다.
오후 1시에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편은 오후 2시 50분 전후로 소연평도에 도착하고 대연평도에서 오후 3시 30분에 인천으로 향한다.
출발 10분 전까지 탑승을 마치지 않으면 하루를 더 묵어야만 한다.
여하튼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오전 배를 타고 들어가 트레킹과 관광, 식탐방까지 마치고 오후 배로 뭍으로 돌아올 수 있는 코스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갖는다면 소연평이든 대연평이든 1박2일 여행으로 좋다.
가장 좋은 코스는 소연평에 들어가 둘러본 뒤 민박에서 하루를 쉰 다음 날 오전 배로 대연평도에 넘어가 여행 후 오후 배로 나오는 일정이다.
물론 볼 곳 많은 대연평으로 1박2일을 잡아도 괜찮다.
대연평도는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른 섬이다.
당섬 선착장에서 내린 뒤 연평도 초입인 서해5도특별경비단부터 연평면사무소까지 600m~700m 거리에 각종 가게와 주택이 몰려있다.
식당, 카페, 치킨집, 중국집에 미용실에 차량 정비소까지 육지와 다를 것이 없다.
10여 분을 걸어 숙소인 둘리민박에 짐을 던져두고 일행은 다시 구리동해변으로 길을 나섰다.
2분여를 걸으니 연평초중고등학교와 연평면사무소가 나왔다.
생태 탐방 중이었지만 방송에서만 봤던 연평면사무소를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14년 전 면사무소 공터에 포탄이 떨어지자 직원과 주민이 화들짝 놀라 뛰던 장면이 CCTV에 찍혔고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그렇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북한군은 선전포고도 없이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를 포격했다.
정전 협정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인 거주구역에 대한 포격이었고 주민 사망자가 발생하며 국민들이 경악했다.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전쟁은 입씨름으로나 그쳐야지 실제 발생하면 승자가 어디 있겠는가.
응전은 하되 확전은 고심에 고심에 고심을 더해야 할 일이다.
조금 더 걸으니 조기의 신(神)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사당 충민사(忠愍祠)가 나왔다.
임경업은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서해안 여러 지역에서 마을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임 장군이 중국으로 가던 길에 식량이 모자라자 연평도 근처에서 가시나무를 꺾어 바다에 던졌더니 조기가 잡혔다는 것이다.
임 장군 사후에 서해안의 사람들은 그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다시 길을 재촉해 30여 분을 걸으니 바람도 시원한 구리동해변이 나타났다.
군부대가 관리하는 해안이다 보니 철조망 출입문을 통과해야 하고 일출, 일몰 출입제한도 있다.
구리동해변은 길이 1km, 폭은 150여m의 크기다.
특이하게도 자갈해변 아래 새하얀 모래사장이 이중으로 펼쳐져 있다.
물은 대청도의 지두리해변, 농여해변처럼 서해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푸르렀다.
“서해 하면 갯벌만 생각하는데 좀 떨어진 섬들은 죄다 모래사장이고 해수욕장입니다.”
여름 바캉스 객이 없는 한적한 해안에서 모두들 한참 동안 물멍을 때렸다.
저녁은 대연평도의 보물 ‘보물섬’ 식당에서 소라짜글이와 조기매운탕, 꽃게탕으로 피로를 풀었다.
조기매운탕과 꽃게탕은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조금 달기는 했지만 소라짜글이는 바다 향도 향이고 이가 부실해지기 시작하는 50대들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기가 그만이었다.
다음날 숙소인 둘리민박에서 가시리국으로 속을 달래고 조기역사관으로 길을 나섰다.
연평도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조기’와 성어기에 형성되는 ‘파시(波市)’, ‘꽃게’, ‘갈매기’다.
대연평도는 조기역사관을 중심으로 등대공원과 평화공원이 몰려있다.
더욱이 병풍바위와 빠삐옹절벽, 가래칠기해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군 터널도 바로 인접해 있다.
조기역사관은 리모델링 보수 공사 중이었지만 문이 열려있었다.
“참조기는 황조기라고도 하는데 30cm는 넘어야 했어요. 심지어 40cm씩도 하고요. 지금 생각하는 조기와는 사이즈가 다릅니다. 부레를 움직여 우는데 조기는 ‘구우 구우’, 민어는 ‘욱 욱’웁니다. 조기 우는 소리는 염소와 개구리의 중간 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수십만 마리가 운다고 생각해보세요.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우는데 주민들이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 우는 소리 때문에 어군탐지기도 필요 없었죠. 대나무통을 넣고 귀에 대면 어디에 고기가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죠. 당시에 냉장시설도 없고 인천 연안부두까지 가져가려면 6시간, 화물선은 12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고기가 한창 잡힐 때는 파시가 열렸죠. 많을 때는 3천 척이 몰려왔다고 해요. 연평도가 생태적으로는 하루에 5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데 많을 땐 5만 명이 왔다고 하니 짐작이 가시나요. 그때 부르던 노래가 조기를 퍼 실을 때 하는 배치기 소리입니다.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 전국에서 배들이 몰려왔어요.”
노형래 소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서해 연평도 조기도 동해의 명태처럼 씨가 말라 버렸다.
파시가 열린 것도 1968년이 마지막이었다.
어민과 학자들은 바다의 오염과 산란장의 파괴, 수온의 변화를 꼽았다.
“동력선이 등장하고 그물도 커졌어요. 어업방식이 바뀌고 발달한 거죠. 수온 변화 영향도 컸고요. 남해안부터 이동 경로에서 모두 잡히면 못 올라오잖아요. 그렇게 조기에서 꽃게로 주 어업 종목이 바뀝니다.”
조기역사관 2층 전망대에 오르니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리고 바로 앞에 제주도 성산일출봉이 연상되는 구지도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구지도는 정부가 지정한 특정도서(特定島嶼)다.
특정도서는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사람이 거주하지 않거나 극히 제한된 지역에만 거주하는 섬으로서 자연생태계·지형·지질·자연환경이 우수한 섬을 환경부장관이 지정 고시한다.
구지도는 멸종위기야생생물 Ⅰ급인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 Ⅱ급인 검은머리물떼새가 서식하고 있고 특히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여서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섬이다.
일행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새하얀 등대에서 잠시 사진을 남기고 군 터널로 향했다.
노 소장은 터널을 “동굴”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폭 2m, 길이 150m의 군 터널은 인공이지만 동굴과 다름이 없었다.
동굴 아래에서 올라 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녹슨 포가 하나 나왔다.
‘이 시설은 국민의 정성어린 방위성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976. 5. 30’
포 옆 벽면의 낡은 동판이 당시 상황을 묵묵히 전달하고 있었다.
동판을 보고 생각에 잠기려던 찰라 포 앞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와...”
“히아...”
연평도의 해금강 가래칠기해변이다.
병풍바위와 빠삐옹 절벽이 있는 아담한 몽돌해변 가래칠기.
지명 유래에 대해 ‘갈매기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란 해석이 있는데 노 소장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소리쳤다.
“끼야... 봤어 지금?”
“저거 저 새 저거...”
“그래, 칼새야!”
칼새는 하늘에서만 산다.
번식기에 둥지 틀 때를 빼고는 일 년 중 열 달 가까이를 하늘에서 먹고 자고 짝짓기하며 장거리 이동을 한다.
심지어 3년 이상 하늘에만 있는 경우도 보고가 됐을 정도다.
제비와 비슷한데 칼새는 허리인 위꽁지덮깃이 하얗다.
또 칼새는 칼새목, 제비는 제비목으로 서로 다르다.
하지만 비슷한 생태 습성을 가지고 있어 외형은 유사하다.
과명 자체가 ‘다리가 없다’는 뜻인데 땅에 내려올 일이 없다 보니 다리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짧다.
최고 시속 170km로 비행이 가능한데 동물 중에서는 가장 빠른 기록이다.
칼새의 여운을 간직한 채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보물섬’으로 향했다.
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숨을 쉴 때마다 꽃게가 콧속으로 들락날락 거렸다.
통통한 갈매기들이 하늘에 또는 바닷가 돌밭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길옆에서는 외국인 선원들이 꽃게 통발과 밧줄 정리에 정신이 없다.
섬도 이제는 외국인이 아니면 일손을 찾기가 어려운 시절.
이윽고 도착한 식당에는 이미 밑반찬이 깔려 있었다.
주인장이 돌게장을 내오기 시작하자 일행의 젓가락이 바빠졌다.
“이야, 진짜네.”
“나 원래 돌게장 잘 악 먹는데 이건 비린내, 잡내가 전혀 없어요.”
일행의 감탄사가 이어졌고 노 소장이 말을 보탰다.
“제가 그랬잖아요. 섬 식당은 웬만하면 배신하는 일이 없다니까요.”
먹기 편하게 집게발이 손질돼 있고 더 달라면 더 주는 만 원짜리 돌게장 백반 인심에 모두들 허리띠를 풀었다.
이어진 두어 시간의 여유.
일부는 연평도 포격전 당시 피폭된 가옥을 보러 안보교육장으로 일부는 안목선착장에서 바다를 조망하기 위해 삼삼오오 헤어졌다가 오후 3시 30분 인천행 배에 몸을 실었다.
다음번 섬 탐방은 여름으로 들어가는 6월 인천 강화의 볼음도다.
*다양한 사진과 함께 기사를 읽으실 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섬 특집] 저어새에 멈칫, 밴댕이 회무침에 꼴깍... 백합의 섬 볼음도
[섬 탐방 특집] 얼굴바위와 돌게장 백반이 반기는 섬, 연평도 - 1
[섬 탐방 특집] 얼굴바위와 돌게장 백반이 반기는 섬, 연평도 - 2
[섬 탐방 특집] 얼굴바위와 돌게장 백반이 반기는 섬, 연평도 - 못 다 쓴 이야기
[섬투어 특집] 휴가 끝? 곳곳이 이색풍경, 연중무휴 대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