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기행] 옛 성당 보며 애잔한 지난 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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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김포시 |
김포시 북변동 259번지, 시내를 굽어보는 나지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김포성당 옛 성전.
1956년 12월 완공된 본당은 1999년 새 성전이 축성되면서 해체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신자들의 땀방울 깊이 스민 역사성 보존을 위해 존치하게 되었다. 그 후 옛 성전은 2005년 보수공사를 거쳐 2006년 5월 교육관 및 강당으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옛 성전, 과거와 현재를 잇다
외형은 물론 신자 수도 커지고 있는 오늘날, 본당마다 지닌 고유한 역사는 외형에 가려 한 발짝 밀려나 있는 게 사실이다. 신앙을 떠나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삶, 지역의 정서가 스민 ‘고향’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새 성전과 옛 성전을 나란히 둔 김포성당은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인천교구에서는 주교좌인 답동성당과 소사성당 이어 세번째로 1948년에 설립된 본당이기도 하지만 특히 새 성전 오른 편에서 홍도평을 굽어보는 옛 성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웅장하게 들어선 새 성전의 조화는 어머니 품에서 장성한 ‘모자의 모습’을 보는 듯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1930년대 걸포리공소로 거슬러 오르는 김포성당의 역사는 1946년 본당으로 승격(초대 김병호 베네딕도 신부) 후 현 구성전 자리로 터를 옮겨 성당을 신축하게 됐다. 지금에야 포크레인과 레미콘 등 사람 손을 빌지 않고도 뚝딱 건물을 지어내지만 농기구가 전부였던 당시에는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성당 공사를 해야 했다.
남성들은 계양산 중턱부터 큰 돌을 직접 나르고, 여성들은 땅을 고르고 근처 개울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날랐단다. 이렇게 1년여 동안 신자들이 손으로 직접 지은 99평 석조 성당은 1956년 12월 봉헌돼 40여 년간 본당으로 사용되다가 이제 신자들에게 옛 향수를 선물하고 있다.
농업의 역사를 품은 곳, 김포성당
김포성당을 이야기 할 때면 옛 성전이 굽어보는 홍도평야의 비닐하우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제 비닐 또는 비닐하우스를 빼놓고는 어떤 농사 이야기도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비닐하우스가 집단을 이뤄 세워진 곳이 김포의 홍도평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 김포성당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욱 많지 않다.
한강이 꽁꽁 얼어붙던 시절, 안에서는 파란 새싹을 틔우는 비닐하우스는 누가 보아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바닥에 깐 쌀겨와 거름이 발효하면서 훈훈한 열기를 발산하고, 외부와 차단돼 훈훈한 열기를 그대로 품고 있는 비닐하우스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그렇게 농업의 혁명이 시작됐다. 1971년 김포성당 토마스 신부가 조직한 김포카톨릭농민회에 의해서 한국 최초의 비닐하우스 농사가... 경기 북부, 겨울 날씨로 치자면 이북에 가까웠던 김포 지역에서 2모작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 시민들의 쉼터가 되다
중학교 입학 후 첫 백일장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옛 김포성전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학생들 가운데서도 나는 유독 옛 성전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의 기억으로도 김포성전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웠고 특히 5월이면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김포성전을 올려다보곤 한다. 그리고 벚꽃 피는 4월이면 김포성전에 올라 흐드러진 벚꽃비를 맞으며 삶의 여유를 가져보기도 한다.
1만여 평에 달하는 넓은 터에, 옛 성전을 지키는 아름드리 벚나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래 전부터 이 터를 지켜온 소나무 숲, 시시때때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들꽃들은 도심 속 어머니 품 같은 안식을 준다.
누군가, 깊은 사색에 잠기고 싶거든 역사와 추억이 깃든 김포성당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 글은 한국예총김포지회가 발행한 「김포예술」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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