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기고칼럼
HOME  > 오피니언 > 기고칼럼

[임종광의 서포만필] 수박 한 덩이

컨텐츠 정보

본문


워터멜롱.jpg


유독 금년 여름은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OO동에서 몇 번째 양성 환자가 발생했다”는 코로나 발생 속보가 휴대폰 알림으로 울릴 때마다 마음을 졸이고 있던 8월 어느날 나는 불의의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주말을 이용해 늘 다니던 고촌 아라마리나 자전거 코스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하성면 전류리 한강 제방코스로 가던 중 마주오던 차량을 피해 갓길로 내려서다 부주의로 속도가 붙은 자전거와 함께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이로 인해 오른쪽 어깨 쇄골이 부러지는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그 즉시 김포우리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고 다행히 수술 경과도 좋고 해서 퇴원해 2개월 이상 직장에 근무하면서 외래치료가 불가피했다. 오른팔을 고정한 상태로 팔의 움직임과 관리를 절대 요한다는 주치의 말씀을 명심하며 여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걷는 것은 자유롭지만 운전도 안되고 상체의 움직임은 조심을 요하기에 퇴근후 아내와 아파트 산책이 유일한 일과이고 주말은 물론 나머지 시간은 집안에 있어야 하니 스트레스가 상당히 쌓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6층인 우리 집의 아래인 4층 이웃이 한달간 집수리를 하면서 적잖은 소음에 시달렸다. 다행히 집수리 중인 그 이웃은 평소 친숙한 사람들이어서 그나마 참을 만 했다. 


그런데 4층 집수리가 마무리 될 무렵 이번엔 바로 윗층인 7층에서 집수리를 시작한다는 공고문이 엘리베이터에 붙었다. 집안에만 박혀 무더위와 씨름해야하는 이 여름에 그 수리 공고문은 솔직히 두렵기까지 했다. 


다음 날부터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굉음이 머리 위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온 아파트를 뒤 흔드는 철거 소음을 앞으로 한 달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 막막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잘 견딜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신선한 생각이 계시처럼 떠올랐다.


아내를 불러 가장 크고 좋은 수박을 한 덩이 사서 공사하는 사람들에게 갖다 주자고 제안했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아내도 금새 내 뜻을 알아차렸다. 엘리베이터 안 공고문에 적힌 공사 책임자의 휴대전화로 연락해 “바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 잠깐 올라 가겠다”고 했다. 


그 책임자는 당연히 소음 때문에 항의하러 오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언짢은 표정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더운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제 보니 공사 시작과 종료 시간도 잘 지키시고, 끝난 뒤 쓰레기도 말끔히 치우시더군요. 거동이 좀 불편한 저를 위해 가능하면 소음을 적게 내려고 배려하시는 마음도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 올라왔습니다.” 


짐작하건데 예상과 다른 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공사 책임자가 어쩔줄 몰라 했다. “제 평생 집수리 여러번 해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수박을 제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요.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하긴요. 아파트를 수리하는 것은 있을수 있지요.” 집으로 내려와 있는데 잠시 후 그 공사 책임자라는 분이 전화를 했다. “아까는 제가 감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혹시 고치실 거 있으면 무료로 다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고칠 것 없고요. 있더라도 비용을 들여서 해야지요.”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참 가볍고 신선했다. 이어진 한 달간의 공사는 예상대로 소음과의 전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이 사람들이 공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후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한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불만을 토로하다가 내가 그 분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입을 다물기까지 했다. 


근자에 언론에 비치는 층간 소음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변질되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듣고 있다.


흔히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생각하기 나름이다’라고 한다. 댓가를 바라고 또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다 같을 것이다. 누군가 좀 더 상대방을 이해하려하고 그 상대방은 주위 사람들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하면서 행동을 한다면 티격태격 싸울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수박 한 덩이로 집수리의 소음을 전혀 소음으로 느끼지 않는 평안을 체험했고 덩달아 이웃 간에 따뜻함을 주고 받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올여름은 잘 보낸 것 같다. 생각지 않았던 자전거 사고가 선물로 준 인간 관계의 경험과 소득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다.


그 와중에 시간은 흘러 나도 이제 어깨를 짓누르며 불편을 주던 보정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간 여름을 뒤로하고 이 늦가을 바람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제67회 농민문학 수필 신인상 당선작으로 임종광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사람들] 임종광 실장, 농민문학 수필 신인상 당선... 작가 등단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기고칼럼 33 / 3 페이지

인기 기사


사람들


주말N


최근기사


중부데일리TV


포토


기고/칼럼


기자수첩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