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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과연 안전 불감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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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공포증, 대인기피증…. 
보통 사람들이 ‘공포증’을 떠올리면 흔히 연상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병명이 없다고 해서 자신이 공포가 없는 사람인 줄 만 안다. 하지만 공포증은 21세기 모든 한국인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밤 전쟁이 발발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한국. 하지만 그런 고민 따위 없이 태평하게 잠이나 자는 한국인을 흔히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지금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병명은 무엇일까? 바로, ‘안전과민증’이다.
 
안전 과민증? 
이 병을 들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안전 불감증과는 반대로, 너무 하나하나에도 조심해가며 예민한 성격을 띠는 증상을 보이곤 한다. 안전과민증은 보통 전 연령에서 고루 분포 되어서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안전 과민증 환자는 주로 청소년과 중년층에서 많이 보이곤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지금 말할 병명은 사람들의 기본 상식과는 조금 다른 얘기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가자면, 자기 자식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다들 누구든지 성공하고, 행복하길 원한다. 그 행복의 조건은 무어냐? 자신이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자들은 ‘돈’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그 돈을 잘 벌기 위한 방법은?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보통 고학력을 요구한다. 토익, 조기유학, 전교 몇 등…. 분명 이런 길이 부자가 되는 길의 한 방법이긴 할 것이다. 게다가 아주 전망이 확실한 방법 말이다. 그렇기에 부모님들은 대체로 자식들을 모두 이 길에다가 떨구어 놓곤 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 대학 잘 간다!’ 이런 말은 어느새 한국의 수식어처럼 붙어버렸다. 누군가 파놓은 이 길은 이미 확실한 신뢰가 있었다. 아주 잘 포장 되어있는 아스팔트길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식이 청소년이 되면서 여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꾸 가라는 길은 안 가고, 검증 안 된 옆길로 새는 것이다. 포장된 안전한 길로 가라 하면 자꾸 옆에서 흙을 파고 있고, 동굴 안에 뭐가 있나 궁금해 하는 것이다.
 
이때 부모님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저러다가 내 자식이 잘못 되는 건 아닌가? 흙을 파다가 세균에 감염 되면 어쩌지? 동굴 안에서 곰한테 잡아먹히면 어쩌지? 이러면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점점 커진다. 이것이 바로 부모님들의 안전과민증이다. 최대한 자기 자식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다치지 않기 위해 온갖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청소년들도 길이 이것 하나인줄만 알기 시작한다. 검증 안 된 길에 발을 디뎠다가는 지뢰를 밟을 지도 모르고, 뱀에게 물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걱정들은 절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학업에 뿌리 잡은 사고방식이다.
 
물론 모두들 이 안전한 길의 목표지점에 골인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검증된 길은 너무나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깃발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걸 잡으려 하는 사람은 수백만, 수천만이다. 이럴 때 결국 청소년은 한계를 느끼고 좌절을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이럴 때 새로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설사 누가 가보지 않았더라도 그 곳을 당당히 탐험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가끔은 뱀에 물릴 수도, 넘어져서 피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때 손이 더러워질 거라고 파지 않았던 흙 밑에 보물 상자가 있었더라면? 동굴 안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면? 많은 위인들이 그런 보물들을 찾을 수 있었던 건 근거 없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들은 ‘안전 과민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학생들은 모두 공부라는 한 길만을 위해 달려가곤 한다. 물론 이 길이 틀린 건 결코 아니다. 공부가 적성에 맞는 사람은 그 길을 따라 가면 된다. 하지만 뉴스 매스컴에 보도 되는 고등학교 대상으로 ‘청소년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 이유’에서 학업이 74.3%를 차지한 것을 보면, 지금 이 길이 너무 포화상태임은 틀림이 없다. 황새보고 수영을 하라 하면 할 수 없고, 거북이 보고 날아보라 하면 날 수 없듯이 모두들에게는 제각기 뛰어난 능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 능력을 찾기까지는 많은 넘어짐과 고통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픈 것을 피하곤 하지,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아픔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가끔은 안전과민증에서 벗어나는 대범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청소년과 중년층뿐만 아니라 사회에 막 첫 걸음을 디딘 성인들에게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모든 한국인들이 조금만 더 대범해진다면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넘어서 또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트라우마와도 같던 안전 과민증이 더 이상 병적인 증상이 아니길 바라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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