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3일, 우리 반으로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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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공부다 뭐다 학교에서 주는 압박에 시달리는 전투적인 나이다. 주위에서 18살이면 정말 꽃다운 나이라는데, 이 꽃이 잡초인지 할미꽃인지도 모를 나이다. 공부라는 골목대장에 내 머릿속의 순수함 들은 저 구석 멀리로 숨어 버린 지도 오래였다. 그렇기에 내가 처음 이 책을 폈을 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큰둥했다고 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 같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의 나의 모습은, 그래. 타임머신에 다녀왔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 온 그런 모습 말이다. 스트레스로 노곤했던 눈동자가 마치 초등학생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희망을 품은 그런 모습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 이 책으로 인해 나에게 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지금부터 이 이야기에 대해 읊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몇 주 전부터 꿈에 잔뜩 부풀어있던 수학여행. 누구랑 방을 짤까? 버스에서는 누구랑 앉을까? 이런 별별 기대로 학교를 들어섰는데, 선생님이 말하시기를 “오늘 방 배정에 대해 물어보는 애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선생님 마음대로 방을 짜 줄거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에 굳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아뿔싸, 그만 다른 남자아이가 반 배정에 대해 말을 꺼내고 만 것이다. 선생님은 결국 약속한대로 전혀 안 친한 아이들을 섞어서 방을 배정해주셨고, 우리들은 모두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그런 모습이 아무래도 안쓰러우셨는지 서로 상의를 한 아이들은 방을 교체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때 나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조원을 정한 건 바꾼 것도 안 바꾼 것도 아니야….’ 어중간한 수학여행이 되어버린 게 어린 맘에는 크나큰 실망감이었던 걸까? 결국 이렇게 어깨가 축 늘어져서 집에 오자 엄마가 이유를 물어보셨고, 그때 하셨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누리야, 이럴 땐 선생님한테 당당히 말씀을 드려. 네가 이러이러해서 속상했다고 말이야. 선생님은 절대 그런 아이를 미워하거나 혼내시지 않아.”
그 말 하나가 시발점이 되어 불타오르는 투지로 당장 선생님께 메일을 써내려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누리입니다….로 시작한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저희가 약속을 어겨서 방 배정을 하지 못하게 된 건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후에 저희에게 또 다시 바꿀 권리를 주신 건 잘못 됐다 생각한다. 차라리 흩어지면 제대로 흩어지거나, 뭉칠 거면 제대로 뭉치거나. 이렇게 어중간하게 뭉쳐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선생님께선 어릴 때 조금 더 친한 친구들과의 여행에 들뜬 적이 없으신가요? 아직은 낯선 친구들과의 친해질 기회는 아직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이런 기회에 대해, 선생님께서 저희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시면 안될까요?”
꽤나 간절했는지, 어디서 들은 건지도 모르는 ‘선처’, ‘권리’, ‘타당한 이유’등의 단어를 막 갖다 붙여놓았었다. 어찌어찌해서 혼자 열심히 글을 써서 메일을 전송하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받은 긴 장문의 답장은 나의 철부지 같던 마음을 사그러들게 만들었다. “그래, 누리야.”로 시작한 편지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들까지 선생님은 고민하고 계셨다는 걸 느끼게 하였다. 친한 아이들끼리 방을 붙여놓으면 생겨나는 소외 되는 친구가 걱정이었다는 것, 그러자고 아이들을 선생님 맘대로 짰다간 약속을 어긴 그 남자아이가 너무 욕을 먹을까봐 곤란했다는 것….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임무를 주셨다. ‘누리야, 그 소외 된 친구가 누군지 알 수 있겠니? 혹시 누리가 그 친구를 앞장 서 받아 줄 수 있는지 답변 해 줄 수 있겠니? 그래준다면 선생님은 더 이상 걱정이 없을 것 같아.’
비록 나는 고작 13살이었지만 그 메일을 다 읽고 나자 분명 무언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것이 있었다.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의 나는 선생님은 무조건 튼튼한 기둥 인줄만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매달리고, 차고, 안겨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거대한 기둥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도 결국엔 선생님이기 전에 사람이었다. 당연히 선생님도 선생님만의 고민이 있기 마련이었다. 선생님! 그 이름이 어쩔 때는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을 것임을, 결국 모두 다 같은 사람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5년 전 느꼈던 그 감정이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이런 점을 깨달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방 배정에서 나는 결국 굳은 사명감을 갖고 그 친구를 우리 방의 조원으로 초대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무턱대고 칠판에다 친구의 이름 석 자를 쓰자, 다른 조원들은 황당하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면, 내가 손을 잡았을 때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던 그 아이의 눈을 보았기 때문에….
다른 고등학교에 올라온 지금은 그 친구와 연락은 닿지 않지만, 그 수학여행 이후로 그 친구는 나와 3년 친구가 되었고, 친구들과도 금세 친해져 나와 팔짱을 끼고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때 느꼈던 담임선생님의 감정은, 이 책에 나오는 선생님들의 심정과도 같지 않았을까? 제자들의 일로 속을 썩고, 또 제자들로 또 다시 치유 받는 그런 마음 말이다.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힘들고, 버럭 화를 내고 싶을 때 언제 또 쪼르르 와서 해맑게 눈을 마주치고 웃는 그런 제자들…. 이 책은 그런 인간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 문구 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학생 같은 선생님, 선생님 같은 학생.’ 선생님도 학생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학생도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첫 장은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로 시작된다. “그때 저는 부모가 없다고 해서 남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이런 말을 하는 학생에게 스승은 대견함, 그리고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여기서 다시금 느꼈다.
결국 선생님과 학생은 수평에서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관계이지, 절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나의 생각을 한층 더 굳건히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책이었다. 사실 책을 처음 폈을 때에는 제자를 부담스러워하고, 때론 말실수도 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선생님들이 이래도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또 다시 반성하고, 서로 교감하고, 한층 성장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 이게 학교였지.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게 되었다. 결국 학교는 학생들만이 가르침을 받는 곳이 아니다. 선생님도 그 안에서 한 층 더 성장하고, 학생들도 성숙해져가는 그런 곳이 정말 참 된 학교의 의미였다.
참 된 학교의 의미보다, ‘학업’이라는 경쟁의 레이스에 서서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21세기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분명 하나의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지침서를 넘어서, 그들에게 또 다른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게 감사의 말씀을 표하고 싶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와 어느 순간부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꽉 차있었던 나에게 5년 전의 그 순수함을 보여주어서 말이다. 마치 타임머신처럼…. 나는 2013년 02월 26일, 타임머신을 타고 5년 전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반 일용이’라는 양탄자를 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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