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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손권의 비전 그리고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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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의 천재, 관리의 천재, 삼국지에서 이 이름은 당연히 손권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망했지요. 조조의 위와 유비의 촉한이 망한 후 사마씨에 의해 정벌당하게 되는 것이 동오입니다. 
 
지방 군벌이었던 그의 아버지 손견,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권력을 이어 받았으나 역시 비명에 간 그의 형 손책, 어린 나이에 권력을 승계하여 오랜 기간 동안 조조의 압력을 이겨내고 나름대로 풍족한 물산과 인력으로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에서 수성을 해 나갑니다. 
 
워낙 인물이 뛰어나 조조는 아들을 낳으려면 손중모(중모는 손권의 자)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극찬도 했지요. 필요할 때는 숙이고 참고 인내하면서 아버지와 형의 권신들을 설득해 가면서 동오 정권을 유지시키고 주위의 정적들을 제거해 갑니다. 
 
그의 충실한 신하로는 노숙이나 주유,  육손이나 여몽같은 사람들이 있지요. 촉한 정통론 때문에 묻혀버렸기는 했지만 노숙이나 주유는 절대로 제갈량과 비교해서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여몽과 육손은 유비와의 전쟁을 이릉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군들로서 단순한 개인의 무예보다는 전략, 전술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춘추나 반복해 읽은 관우나 책이라고는 모르는 장비와는 수준이 달랐지요.
 
손권의 형인 손책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의문과 시기도 확실하지 않지만 손권은 손책과는 달리 형이 죽었을 때 강동의 안정된 국토와 군대 그리고 풍부한 인재와 물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손견이 죽었을 때는 대부분의 군사가 원술에게로 흡수되었기 때문에 솔직히 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는 형 덕분에 강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다만 두 형제 모두 18살 정도에 권력을 이양 받았고 특히 손견이나 손권이 모두 갑작스럽게 죽었으므로 많은 시간도 그리고 안정적으로 권력을 잡기는 힘들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상당히 젊어서 출사한 제갈량도 28살의 나이였으며 조조는 40이 넘어서 두각을 나타냈고 유비는 50이 되어서야 반쪽짜리 서천을 가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였고 또 다르게 보면 어린 소년이 그 이후 몇십년을 강대한 지방군벌로 가꾸어 갔으니 대단하다 할 것입니다.
 
제 의문은 그럼 손권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 강동 동오의 국가적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유비와 제갈량은 한실 부흥이라는 목표와 비젼이 있었습니다. 조조 역시 겉으로는 한실의 부흥과 국토의 재통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재통일의 주체가 자신의 아들과 위나라였기는 했지만 전편에서 설명드렸듯이 이는 적어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 공식적으로 내세운 조직과 권력의 외향적 목표는 역시 한의 재건이었는데 주요 목표는 한실의 재건보다는 국가의 재통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손권이라는 사람 즉 동오의 리더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적어도 그의 입으로는 오나라를 통일 국가로 만들자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겉으로는 한실의 신하로 칭했고 때로는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조를 쳐서 황제를 구하겠다고 적극적으로 공략을 피지도 않습니다.
 
큰 그림속에서 본다면 강력한 적 조조를 막고 필요하면 유비에게도 자신의 어린 여동생을 줄 정도 정략적으로 연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천하 삼분 지계를 처음 내세운 것은 노숙이란 말이 있지요. 위, 촉, 오가 아니었고 서천 즉 사천을 동오가 점령하여 결국 조조와 한판 벌인다는 내용은 비슷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계략은 그저 노숙의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아버지와 형을 졸지에 이어서 잃은 이 젊은 청년 손권은 제 생각에는 궁극적으로 통일이나 황제라는 꿈은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그도 칭제를 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큰 국가를 만들기는 하지요. 하지만 사실 그뿐입니다. 적벽대전과 이릉전투 이후에는 사실 공격적인 큰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이긴 후에도 어느 정도 황제를 끼고 있는 조조에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사실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운이 좋아서 정말 통일을 하면 좋겠지만 자신의 강동정권 즉 동오의 흥망을 걸고 공격전쟁을 할 마음은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조조는 가장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황제를 끼고 있었고 이로 인해서 지속적으로 권력에 대한 도전을 받습니다. 즉 승상이나 재상이 항상 겪는 문제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가 황제가 되지 않은 까닭은 이미 전편에서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유비와 손권은 사실 국가가 작기는 했지만 완전히 자기들의 것이었습니다. 권력 초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지만 손권은 적벽에서 이기고 효정전투에서 이긴 후 사실 큰 전쟁없이 조조의 위와 소강상태를 유지합니다. 촉과도 더 이상 대규모 전쟁을 하지 않고 제갈량과 연합하는 방식을 다시 취하지요. 하지만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조조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머리가 좋았던 손권은 양자강이라는 천혜의 장애물 덕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북방의 조조의 공격에만 항상 방어를 하면 되었습니다. 사실 산이나 산맥을 방어선으로 하는 것 보다 바다나 강을 방어선으로 하는 것이 방어하기는 상당히 유리합니다. 산은 몰래 넘어도 되고 또 잘 보이지 않으며 산을 넘는 적은 위에서 아래를 공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길이 험하더라도 우회가 가능도 한 것이지요. 또한 중요한 관이 뚫리면 그 다음에는 파죽지세가 될 가능성이 많았고 촉이나 한니발이 공격한 로마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양자강이라 불리는 중국의 장강을 가보면 특히 조조의 위와 동오의 손권이 위치했던 지역을 보면 그 경계선이 지금의 무한 동쪽의 형주부터 남경(건업)을 거쳐양자강 지류의 하구로 빠집니다.
 
강력한 수군을 가지고 있었던 남방 정권인 손권은 북방 보병 및 기마병 출신인 조조를 충분히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장강에 가보면 중하류 지역은 지금도 엄청난 크기의 크루즈 선이 다닐 정도로 상당히 깊고 넓습니다. 그리고 장장 중하류의 수 많은 삼각주와 습지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지류들은 북방 민족이 기동성을 위주로 공략하기 쉽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오의 건국 자체가 방어하기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는 전제가 있는 것이지요.
 
조조가 굳이 수십만 대군을 끌고 적벽으로 남하해서 공격했으니까 나아가서 막은 것이고 유비와의 관계가 좀 좋았을 때 쳐들어 올라가는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가장 믿는 좌우 측근인 주유와 노숙이 죽은 후에는 사실 이러한 천하통일의 야망도 접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것들은 말년의 손권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람도 많이 죽이고 남의 말도 듣지않고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손권은 형을 이어 즉위해서 10년간은 자신의 정권 기반을 잡으려고 죽도록 노력하였고 이후에 한 동안 조조의 위협을 물리치려고 애썼고 나중에는 유비의 공격을 물리치고 주위의 소수 정권을 처리한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지방 정권인 자신의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나이가 들어 지치고 만 것이지요.
 
손권은 분명히 Vision에서 조조와 같은 수준 높은 철학도 유비와 제갈량 같은 한실 회복의 꿈도 없었습니다. 그져 기회가 되면 나도 황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 같고 일부 지역이지만 황제를 칭했고 (그가 차지한 넓이만 해도 사실 한반도의 몇배는 되는 지역이니까요) 소위 말해 잘먹고 잘 살았습니다.
 
말 안타면 허벅다리에 살이 찐다고 하는 말처럼 그 이후 조로해 버렸다고나 해야할까요? 왜 그런 것 있지않습니까? 어떤 기업가가 미친듯이 일하다가 회사가 어느 정도 뭐 100-500억 사이의 매출을 하는 회사가 되면 부동산 사고 주식사고 자기 자식들 물려줄 생각하고 더 이상은 회사를 키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 말입니다.
 
즉 손권의 집단은 통일 국가를 세우려는 야망이 크지 않았고 한의 부하로 신하로 사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으며 나중에 황제를 칭하기는 했지만 국가적 전략과 Vison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좀 무모하기는 하지만 제갈량은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중국 통일의 황제를 보면 대단한 야망과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단시간에 즉 개국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굳이 아들까지 가지 않고 기세가 올랐을 때 치고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사실 아들들은 나중에 늙어 버린 아버지 대신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전 이런 마무리를 해 보렵니다. 손권은 천하통일을 갈망할 큰 포부와 꿈을 살아가면서 잃었고 자신과 동오의 한계를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유씨와 같이 황실도 아니었고 명문세가도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여길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꿈은 멈추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천하를 통일한 후에 무엇을 할지 역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합니다. 조조를 제가하고 한실을 부흥하는 짓은 아무 이익이 없었기에 별로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새왕조를 세우자니 조조의 벽을 넘어야 했고 온 세상 제후들의 비난을 받고 공적이 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조는 계속 후한황실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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